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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法不作爲 違憲確認
(1996. 10. 31. 94헌마204  전원재판부)
【판시사항】
 1. 이른바 眞正立法不作爲不眞正立法不作爲의 의미
 2. 不眞正立法不作爲에 대한 憲法訴願의 제기방법
 3. 진정입법부작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 
【결정요지】
 가. 넓은 의미의 立法不作爲에는, 입법자가 헌법상 立法義務가 있는 어떤 사항에 관하여 전혀 입법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立法行爲의 欠缺이 있는 경우’와 입법자가 어떤 사항에 관하여 立法은 하였으나 그 입법의 내용‧범위‧절차등이 당해 사항을 不完全, 不充分 또는 不公正하게 규율함으로써 ‘입법행위에 缺陷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前者를 진정입법부작위, 後者를 부진정입법부작위라고 부르고 있다.
나. 이른바 부진정입법부작위를 대상으로 憲法訴願을 제기하려면 그것이 平等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등 헌법위반을 내세워 積極的인 헌법소원을 제기하여야 하며, 이 경우에는 헌법재판소법 소정의 提訴期間(청구기간)을 준수하여야 한다.
다. 大韓民國과日本國間의財産및請求權에관한問題의解決과經濟協力에관한協定(조약 제172호)에 의거하여 제정된 舊 청구권자금의운용및관리에관한법률, 舊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 舊 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의 관계규정들을 종합하면, 입법자는 對日民間請求權에 관하여 1945. 8. 15. 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을 주된 補償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예외적으로 終戰후에 발생한 特殊한 상태하에서의 접촉과정에서 취득된 請求權도 보상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함으로써 위 일자 이후에 取得된 청구권에 대하여도 나름대로 立法的 規律을 행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바, 청구인의 이 사건 청구권이 신고 및 보상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 결과로 청구인이 補償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입법자가 1945. 8. 15. 이후 非通常의 접촉의 과정에서 취득된 청구권에 관한 보상입법을 불완전‧불충분하게 함으로써 입법의 缺陷이 생겼기
때문이지, 보상입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므로 이른바 不眞正立法不作爲에 지나지 않는다.
  재판관 김진우, 이재화, 조승형의 反對意見
 가. 다수의견은 입법부작위를 진정·부진정의 두 경우로 나누고 있으며, 그 판단기준을 어떤 사항에 관하여 “입법이 있었느냐”의 여부에만 두고 있으나, 이와 같은 2분법적 기준은 애매모호하여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실효성이 없으며, 가사 2분법에 따른다 하더라도, 헌법상 입법의무의 대상이 되는 입법사항이 여러가지로 나누어져 있을 때에 각 입법사항을 모두 규율하고 있으나 입법자가 질적·상대적으로 불완전·불충분하게 규율하고 있는 경우를 부진정입법부작위로, 위 입법사항들 중 일부의 입법사항에 대하여는 규율하면서 나머지 일부의 입법사항에 관하여서는 전혀 규율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 즉 양적·절대적으로 규율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진정입법부작위로 보아야 한다.
 다. 위 조약의 규정내용과 위 세 보상관련법률의 관계규정에 따르면,
 (1) 이 사건의 경우 헌법 제23조 제1항의 해석상 청구인과 같은 특정집단에게 보상청구권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재산권적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한데도 이 사건 청구권과 같은 대일민간청구권부분에 관하여는 아무런 보상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고 그 후 현재까지도 보상에 관한 아무런 입법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청구인은 이러한 입법부작위에 의하여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2) 가사 2분법에 따른다 하더라도, 이 사건의 경우 위 조약에 따라 입법자가 입법하여야 할 사항(헌법상 입법의무의 대상이 되는 입법사항)은, 일본국 화폐에 의한 청구권, 다른 나라의 화폐에 의한 청구권, 일본국의 국책금융기관에 예치한 청구권, 기타 일본국의 지배하에 있는 금융기관에 예치한 청구권 등에 관한 사항이라 할 것이나, 위 세 보상관련법률은 위 입법사항 중 일부인 일본국 화폐에 의한 청구권, 일본국의 국책금융기관이었던 조선은행 등에 예치한 청구권에 관한 사항만을 규율하고 있을 뿐, 나머지 입법사항에 대하여서는 불완전 또는 불충분하게나마도 규율한 바가 전혀 없어, 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로
 보아야 한다.
【참조조문】
 舊 請求權資金의運用및管理에관한法律 제5조 제1항
 舊 對日民間請求權申告에관한法律 제2조 제1항 제1호, 제5호, 제7호
 舊 對日民間請求權報償에관한法律 제2조 제1항 본문
 憲法裁判所法 제69조 제1항
【참조판례】
 1989. 7. 28.선고, 89헌마1 결정
 1991. 9. 16.선고, 89헌마151 결정
 1993. 3. 11.선고, 89헌마79 결정
 1993. 9. 27.선고, 89헌마248 결정
청 구 인     조   ○   학
             대리인 변호사    이   석   연 (국선)
【주    문】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1942년경 만주국 열하성 ○○에 있는 일본국 소유 주식회사 ○○광산 ○○출장소 직원으로 입사하여 3년간 종사하다가 해방직전에 위 출장소장 오까자끼 명미상의 피난명령을 받고 위 출장소를 출발하여, 1945. 8. 21. 만주 안동(현재 단동)에 도착한 후 해방이 된 사실조차도 모른 채 같은 날 위 안동에 있던 일본국 소유의 만주 ○○은행에서 그동안(3년간) 피땀흘려 모았던 일본국 화폐 합계금 17,900원(圓)을 고향으로 송금하고 그에 대한 1945. 8. 21.자의 같은 은행 발행의 ‘통상위체증서’를 받았다.  그 이튿날 신의주에 도착하고서야 비로소 해방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송금한 돈도 찾을 수 없다는 풍문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다시 위 안동의 위 은행에 갔었으나 이미 위 은행이 폐쇄되어 찾지 못하고 평안북도 운산에 귀향하였다가 1945. 11.경 월남하여 위 위체증서를 소중히 간직한 채 일본국의 보상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 한일국교가 정상화되고 이에 따라 대일민간인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이 공포시행되었으나 그 대상은 1945. 8. 15.이전의 대일민간인청구권이기 때문에, 해방사실을 모르고 이루어진 대일민간인청구권에 대한 입법부작위로 인하여 청구인은 재산권을 침해당하였다는 것이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청구서의 기재에 따르면,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1945. 8. 15.이후에 비통상적으로 이루
어진 대일민간청구권에 대한 보상입법을 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에 의한 기본권 침해 여부인 듯이 보이나, 주장의 전취지로 보아 결국 이 사건 청구권에 대한 보상의 내용 및 절차 등에 관하여 규정한 법률이 제정되지 아니하였는지, 제정되지 아니하였다면 그 “입법부작위”가 어떤 유형의 것인지, 그리고 그 “입법부작위”로 인하여 청구인 주장의 기본권이 침해되었는지의 여부 등이다.
2. 청구인 및 이해관계인의 주장
  가. 청구인의 주장
   (1) 청구인이 위 만주○○은행에 대하여 가지는 당시 일본국 화폐가치 금17,900원(圓) 상당의 채권(이하 이 사건 채권이라 한다)은 대일청구권에 포함되는 채권이다.  1965. 6. 22. 한일간에 체결된 “대한민국과일본국간의재산및청구권에관한문제의해결과경제협력에관한협정”(조약 제172호, 발효 1965.12.18. 이하 이 사건 조약이라 한다)은 대한민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내용으로서 대한민국은 일본국으로부터 3억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달러의 재정차관금을 들여오기로 한 것이다.  한편 이 사건 조약 제2조 제1항에서 “양체약국은, 양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한다”고 규정한 점과, 그 제2항, 제3항 규정 및 이 사건 조약에 대한 합의의사록 제1항 규정 및 제4조 (a) 규정과, 한일회담 당시 대한민국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대일청구요강”(이른바 8개항목) 제3항에서 “1945. 8. 9.이후 한국으로부터 진체(振替) 또는 송금된 금품의 반환청구”를 명백히 하고 있는 외에 그 제5항에서 “한국법인 또는 한국자연인의 일본국 및 일본국민에 대한 청구권의 반환청구”를 포함시키고 있는 점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조약의 취지는 1945. 8. 15. 전후를 불문하고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민간채권을 포함한 모든 청구권 문제의 완전 일괄타결을 하고자 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 채권은 한일협정에 의하여 일괄타결된 대일청구권에 포함된다 할 것이다. 
    (2) 국가는 이 사건 채권과 같은 대일민간청구권에 대한 보상입법을 하지 아니하여 청구인의 평등권과 재산권을 침해하였다.
  위 조약에 근거하여 제정된 대일민간청구권에 관한 최초의 법률인 청구권자금의 운용및관리에관한법률 제5조 제1항과 위 법률에 근거한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 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의 규정에 따르면 모두 1945. 8. 15.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이 사건 채권의 경우와 같이 해방된 사실을 모르고 이루어진 1945. 8. 15.이후의 대일민간청구권의 보상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아니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청구인의 평등권과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다.
    (3) 입법부작위의 요건은 구비되어 있다.
  헌법에서 기본권 보장을 위하여 법령에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등이 발생하였음에도 아무런 입법조치를 아니하였을 때에는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이 가능하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고 이 사건에서는 국가가 이 사건 조약에서 명시한 바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청구권을 보상해 주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의 이행으로서 보상에 관한 법률들이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입법부작위의 위와 같은 전제조건은 이미 충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위 대일민간청구권의 보상대상에서 청구인과 같이 1945. 8. 15.직후에 취득한 청구권을 제외한 것이 합리적 근거없는 차별로써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 아닌가가 문제될 뿐이다.
    (4)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불행사상태가 계속되는한 청구기간의 제한이 없다.
    (5) 대일민간청구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구체적 내용과 한계가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 않는 한 이를 행사할 수 없으므로(대법원 1970.11.30. 선고, 70다1367판결; 1970.12.22. 선고, 70다1403 판결 참조) 이 사건의 경우는 국회에서 입법되지 않는 한 청구인의 기본권을 실현할 다른 방법이 없다.
    (6) 1945. 8. 15.직후 발생한 대일민간청구권을 보상대상에서 제외한 입법권행사(부진정입법부작위)의 위헌성
      (가) 국가가 이 사건 조약을 체결하고 일본국으로부터 무상자금 3억불과 재정차관 2억불을 받으면서 동시에 그 권리가 있는 국민의 동의도 없이 대일민간청구권을 소멸시키었다면, 국가는 위 3억불의 무상자금으로 그 청구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에게 즉시 상환하여 줄 책임이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법률의
입법은 국가의 그 당연한 의무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국가는 자의로 1945. 8. 15.이전의 대일민간청구권만을 보상하고 그 직후의 그 청구권에 대하여 보상을 하지 아니하고 있는 바, 이는 자국민의 희생으로 국가가 불법내지 부당이득을 취득하는 결과가 되어 재산권을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권 보장정신에 반한다.
      (나) 국가는 1945. 8. 15.전후를 불문하고 모든 대일민간청구권을 일괄타결한 이 사건 조약에 따라 앞서 본 보상입법을 하면서 1945. 8. 15.직후 해방사실을 모르는 가운데 이루어진 이 사건 채권과 같은 대일민간청구권을 그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입법권의 행사(부진정입법부작위)로서 헌법 제11조 제1항에 반한다.
      (다) 청구인이 행사하려는 위 대일민간청구권에 대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사회질서유지·공공복리 등을 이유로 이 사건 채권 등을 제외시켜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므로 그 점에서도 청구인은 위 입법부작위로 인하여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받고 있다 할 것이다.
  나.법무부장관의 의견
   (1) 이 사건 심판청구는 대상적격이 없다.
  이 사건 입법부작위는 헌법에서 기본권 보장을 위해 법령에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입법자가 이를 방치하고 있거나,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작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입법자가 전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2) 청구인은 청구인적격이 없다.
  이 사건 채권은 1945. 8. 21. 만주○○은행에 대한 채권으로서, 청구인은 이 사건 심판청구를 제기하기까지 위 은행 등에 대하여 채권최고 등 권리실현을 위한 법률행위를 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고, 우리 나라나 일본의 경우 채권 소멸시효를 공히 10년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건 채권은 이미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하였다.  따라서 청구인은 현재, 직접 기본권을 침해받고 있는 자가 아니어서 청구인 적격이 없고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3. 판  단
  가. 넓은 의미의 “입법부작위(立法不作爲)”에는, ① 입법자가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는 어떤 사항에 관하여 전혀 입법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입법행위의
흠결(Lücke)이 있는 경우”(즉, 입법권의 불행사)와 ② 입법자가 어떤 사항에 관하여 입법은 하였으나 그 입법의 내용·범위·절차등이 당해 사항을 불완전, 불충분 또는 불공정하게 규율함으로써 “입법행위에 결함(Fehler)이 있는 경우”(즉, 결함이 있는 입법권의 행사)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전자를 진정(眞正)입법부작위, 후자를 부진정(不眞正)입법부작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재판소의 판례에 의하면, 이른바 “진정입법부작위” 즉 본래의 의미에서의 입법부작위를 대상으로 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려면 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법령에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상당한 기간내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또는 헌법의 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경우이어야 하고, “부진정입법부작위”를 대상으로, 즉 입법의 내용·범위·절차등의 결함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려면 이 경우에는 결함이 있는 당해 입법규정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등 헌법위반을 내세워 적극적인 헌법소원을 제기하여야 하며, 이 경우에는 헌법재판소법 소정의 제소기간(청구기간)을 준수하여야 한다(우리 재판소 1989. 7. 28.선고, 89헌마1 결정; 1993. 3. 11.선고, 89헌마79 결정; 1993. 9. 27. 선고, 89헌마248 결정 등 참조).
  나. 그러므로 청구인이 주장하는 이 사건 입법부작위가 위 두 가지의 유형중 그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1951. 9. 8.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되고 1952. 4. 28. 그 효력을 발생한 연합국과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21조, 제4조, 이에 의거하여 1965. 6. 22. 한일 양국간에 체결된 이 사건 조약 제1조, 제2조, 이 사건 조약에 대한 합의의사록(1965. 12. 18. 조약 제173호) 제2조의 규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채권은 이 사건 조약 제2조제2항의 예외사항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따라서 이 사건 조약의 적용을 받아 일괄타결된 대일민간청구권에 포함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2) 청구인은 이 사건 채권에 대하여 보상입법을 하지 않고 있는 입법부작위가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먼저 청구권자금법등 이 사건 조약에 의거하여 제정된 보상관계입법의 내용에 관하여 살펴
본다. 
  청구권자금의운용및관리에관한법률(1966. 2. 19. 법률 제1741호, 이하 “청구권자금법”이라 한다)은 이 사건 조약에 의하여 수입(受入)되는 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관리 또는 도입함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여 제정된 것인데(제1조), 동법 제5조제1항은 “대한민국국민이 가지고 있는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은 이 법에서 정하는 청구권자금 중에서 보상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전항의 민간청구권의 보상에 관한 기준·종류·한도등의 결정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1971. 1. 19. 법률 제2287호, 이하 “청구권신고법”이라 한다)은 청구권자금법 제5조 제1항에 규정된 대일민간청구권의 정확한 증거와 자료를 수집함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여 제정된 것인데(제1조), 같은 법 제2조제1항은 신고대상의 범위를 “1947년 8월 15일부터 1965년 6월 22일까지 일본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자를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법인을 포함한다)이 1945년 8월 15일 이전 (제1호·제5호 및 제7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에 일본국 및 일본국민(법인을 포함한다.)에 대하여 가졌던 청구권 등으로서 다음 각호에 게기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1974. 12. 21. 법률 제2685호, 이하 “청구권보상법”이라 한다)은 청구권자금법 제5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대한민국국민이 가지고 있는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의 보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여 제정된 것인데(제1조), 같은 법 제2조제1항은 “청구권신고법 제6조의 규정에 의하여 대일민간청구권신고관리위원회에서 증거 및 자료의 적부를 심사하여 당해 청구권신고의 수리가 결정된 것”을 보상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위와 같이 청구권자금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국민이 가지고 있는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만을 보상의 대상으로 규정하였지만, 그후에 제정된 청구권신고법 제2조는 이 범위를 넘어 일정한 경우(같은 조 제1항 제1·5·7호의 경우)에는 1945. 8. 15. 이후에 취득된 청구권까지도 신고대상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청구권보상법은 청구권신고법이 정한 신고대상 청구권 중 신고관리위원회에서 신고를 수리한 것만을 보상해
주도록 하고 있으므로, 결국 대일민간청구권 중 어떤 것이 보상을 받고, 어떤 것이 보상을 받지 못하는지의 여부는 오로지 청구권신고법의 규정, 특히 동법 제2조 제1항의 규정내용에 달려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이 조항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 본다.
    (3) 청구권신고법 제2조 제1항은 우선 “1947년 8월 15일부터 1965년 6월 22일까지 일본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자”의 청구권을 신고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이는 이 사건 조약 제2조 제2항 (a)호를 염두에 둔 규정이다.  이 (a)호는 이 사건 조약의 일괄타결에서 제외된 사항이므로 여기에 해당하는 청구권에 관하여는 보상을 할 필요가 없음이 당연하고, 따라서 신고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청구권신고법 제2조 제1항은 청구권자금법 제5조의 규정에 맞추어 원칙적으로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일본국 및 일본국민(법인을 포함한다)에 대하여 가졌던 청구권을 신고대상으로 하고 있다.  같은 항의 제 2·3·4·6·8·9호에 게기된 청구권은 모두 위 일자 이전의 것만을 신고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한편, 같은 항 제1·5·7호에 게기된 청구권에 관하여는 예외적으로 그 취득시기가 1945. 8. 15. 전이건 후이건 불문하고 신고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제1·5·7호는 이 사건 조약 제2조 제2항 (b)호에 대응하는 규정으로 이해된다.  즉 이 (b)호는 1945. 8. 15. 이후에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된 청구권을 일괄타결의 대상에서 제외한 규정인 바, 이 사건 조약에 대한 합의의사록 제2조 (d)호에 의하면 “종전 후에 발생한 특수한 상태하에서의 접촉”은 위 (b)호 소정의 “통상의 접촉”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는 보상을 하여야 할 것인데, 위 제1·5·7의 각호는 바로 이와 같은 1945. 8. 15. 이후에 비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된 청구권에 대한 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마련된 규정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청구권신고법 제2조 제1항은 이 사건 조약에 의하여 일괄타결된 대일민간청구권의 보상에 관하여 동 조약의 분류(즉, 1945. 8. 15. 이전에 취득한 것과 그후에 취득한 것)에 대응하여 각 사례별로 나름대로의 입법적 규율을 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청구인의 이 사건 채권은 1945. 8. 15. 이후 비통상의 접촉의 과정에서 취득된 청구권의 하나로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청구권신고법 제2조 제1항
제1·5·7호  소정의 신고대상 청구권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이 사건 채권은 위 신고법 제2조제1항 제 1·5·7호의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만약 견해를 달리하여 이 사건 채권이 이 조항 제1·5·7호 소정의 신고대상 청구권 중 그 어느 것에라도 해당되는 것이라면, 국회는 이 사건 채권의 보상에 관하여 입법을 한 것임이 분명하므로 청구인 주장의 “입법부작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아니한 것이어서 바로 그 이유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4) 이와 같이, 이 사건 채권이 신고 및 보상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 결과로 청구인이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입법자가 1945. 8. 15. 이후 비통상의 접촉의 과정에서 취득된 청구권에 관한 보상입법을 불완전·불충분하게 함으로써 입법의 결함이 생겼기 때문이지, 입법자가 그러한 청구권에 관한 보상입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입법자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1945. 8. 15. 이후 비통상의 접촉의 과정에서 취득된 청구권에 관하여서도 나름대로의 입법적 규율을 행한 것이다.
  그 입법적 규율에 있어서 입법자가 이 사건 채권과 같은 사례를 포함시키지 아니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입법자가 부주의로 또는 이 사건 조약의 취지를 오해하여 이 사건 채권과 같은 사례를 누락하였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 할지라도 입법행위가 있었다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그 경우에도 이 사건 채권에 대한 보상을 할 것인가에 관한 입법자의 응답이 전혀 없다고 볼 것이 아니라 이 사건 채권과 같은 성격의 것에 대한 보상은 이를 거부한다는 입법자의 소극적 응답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구인은 이 사건 채권과 같이 1945. 8. 15. 이후에 취득된 대일민간청구권에 대하여는 입법자가 아무런 보상입법을 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이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청구권신고법 제2조의 규정내용을 상세히 살피지 아니한 데에서 온 잘못된 주장이다.
  다.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인 청구인 주장의 입법부작위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진정(眞正)한 의미에서의 입법부작위가 아니고 이른바 “부진정입법부작위”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앞서 본 청구권자금법, 청구권신고법 및 청구권보상법은 1982. 12. 31. 법률 제3613호(청구권자금의운용및관리에
관한법률 폐지법률), 법률 제3614호(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 폐지법률) 및 법률 제3615호(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 폐지법률)로 모두 폐지되었다.  따라서 청구인으로서는 “헌법재판소법 제69조제1항이 정한 청구기간내에” 청구권신고법등 보상관계입법의 관계규정과 각 그 폐지법률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헌법위반이라는 적극적인 헌법소원을 제기하여야 하는 바, 청구인이 주장하는 위 보상관계입법들에 의한 기본권침해는 헌법재판소가 발족하기 이전의 일이므로 이러한 경우 그 청구기간의 기산점은 헌법재판소가 구성된 1988. 9. 19.이라고 함이 우리 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다(1991. 9. 16.선고, 89헌마151 결정 등 참조).  그런데 청구인의 이 사건 헌법소원은 1988. 9. 19.부터 헌법재판소법 제69조제1항 소정의 청구기간인 180일을 훨씬 경과한 1994. 9. 27.에 제기되었으므로 그 청구기간을 도과하였음이 분명하다.
4.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는 청구기간을 도과한 것으로서 부적법하므로 더 나아가 판단할 것도 없이 이를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의 아래 5.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그 나머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일치에 따른 것이다.
5.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의 반대의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심판청구의 적법성을 인정하고 본안판단을 하여야 한다는 의견이므로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가. 이 사건의 심판대상은 1945. 8. 15.이후에 비통상적으로 이루어진 대일민간청구권에 대한 보상입법을 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에 의한 청구인의 기본권이 침해되었는지의 여부이다.
 즉
 청구인은 1945. 8. 15.이전에 이루어진 대일민간청구권에 대한 보상입법에 관하여서는 자기관련성이 없어 주장한 바도 없고 주장할 필요도 없으며 1945. 8. 15.이후에 비통상적으로 이루어진 대일민간청구권에 대한 보상입법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보상입법의 유무는 판단문제에 불과하다).
  나. 우리 헌법재판소는 입법부작위로서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관하여, “헌법에서 기본권 보장을 위하여 명시적으로 그 내용과 범위를 한정하여 법령에 그 입법을 위임하였을 때 또는 헌법해석상 특정인 내지 특정집단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
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전혀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에 국한한다”는 판례를 확립(헌법재판소 1989.3.17. 선고, 88헌마1 결정; 1991.9.16. 선고, 89헌마163 결정; 1991.11.25. 선고, 90헌마19 결정 참조)하고 있는 바, 이 사건 심판청구의 대상인 입법부작위가 위와 같은 적격요건을 구비하고 있는지가 문제가 될 뿐이다.
  이 사건에서 청구인이 침해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기본권인 재산권에 관한 헌법적 근거규정인 헌법 제23조 제1항은 그 해석상 청구인과 같은 특정인 내지 특정집단에게  보상청구권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재산권적 기본권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헌법 해석상 명백하다.
      (1) 대일민간청구권보상의 대상에 1945. 8. 15.이전은 물론 그 이후라도 비통상적인 접촉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한민국 민간인의, 일본국 및 일본국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이 해당된다고 인정되는 점,
  이 사건 조약 제1조 제1항(a)는 “현재의 1,080억 일본원(日本圓)으로 환산되는 3억 아메리카 합중국불($300,000,000)과 동등한 일본원(圓)의 가치를 가지는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용역을, 본협정의 효력발생일부터 10년기간에 걸쳐 무상으로 제공한다......”라 규정하고, 제2조 제1항은 “양체약국은, 양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 9. 8.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평화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 규정하고, 제2조 제2항(b)는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b)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 8. 15.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들어 오게 된 것”이라 규정하여 1945. 8. 15.이후에 있어서의 비통상적인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된 청구권은 위 제2조 제1항의 적용대상이 됨을 명백히 하였고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 사건 조약에 대한 합의의사록 제2조(d)가 이를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이 조항이 구 군정법령 제57호 규정에 의하여 지정된 금
융기관에 예입한 예입금인지 여부와 청구권이 승계된 것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이 사건 채권과 같은 경우의 모든 민간인채권이 이 사건 조약에서 일본국이 지불하기로 한 3억불의 무상자금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라 보여진다. [다만 이 사건 조약의 서명일까지 대한민국과 일본국이 각각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은 제외한다고 하였으나, 위 합의의사록 (2)항(b)에서 “특별조치라 함은, 일본국에 관하여는, 제2차 세계대전 전투상태의 종결의 결과로 발생한 사태에 대치하여 1945.8.15.이후 일본국에서 취해진 전후처리를 위한 모든조치(1951.9.8.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a)의 규정에 의거하는 특별약정을 고려하여 취해진 조치를 포함함)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므로, 종전의 결과로 발생한 사태에 대치하여 패전국인 일본국이 이 사건 채권의 경우와 같은 대한민국 민간인의 청구권을 일방적인 조치로 소멸시킬 수 없음이 국제법상 명백함을 확인하고 있으며, 따라서 위와 같은 제외례가 이 사건 채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할 것이다]
      (2) 이 사건 채권과 같은 경우의 대일민간청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점,
  위 (1)항에서 설시한 바 있는 이 사건 조약 제1조 제1항 규정의 3억불 무상자금을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같은 조약 제2조 제1항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대일민간청구권에 관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채권소멸)하는 것이고, 이 사건 채권과 같은 경우의 대일민간청구권도 위 3억불 무상자금에 포함된다 함은 위(1)항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국가는 이 사건 조약이 발효된 1965. 12. 18.부터 이 사건 채권과 같은 대일민간청구권을 보장할 행위의무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다고 보여진다.
      (3) 이 사건의 경우 이 사건 채권과 같은 대일민간청구권부분에 대하여는, 이 사건 조약에 근거하여 위 청구권자금법, 청구권신고법, 청구권보상법 등 3법을 입법하면서도 그 청구권의 신고 및 보상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등 아무런 보장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이후 현재까지도 신고 및 보상에 관한 아무런 입법을 하지 아니하고 있는 바, 청구인은 이러한 입법부작위에 의하여 바로 청구인 주장의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할 것이며, 이와 같이 보는 것이 우리 재판소의 위 판례의 취지에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다. 입법부작위를 진정·부진정의 두 경우로 나누어 전자의 경우에 한해서만 입법부작위의 위헌성을 논할 수 있다는 다수의견은,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초기에 유지하고 있었던 2분법에 불과하며, 근래에 위 재판소도 이 2분법의 기준이 애매모호하여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실효성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그 점에서도 다수의견은 납득할 수 없다.
  라. 가사 위와 같은 2분법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심판대상의 입법부작위는 진정입법부작위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1) 다수의견이 진정·부진정 입법부작위를 판단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는 불명하나 대일민간청구권에 대한 입법이 있었는지 여부에만 두고 있음은 분명하며, 이와 같은 기준에 의하여 이 사건의 경우가 부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살피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부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를 예컨대 헌법상 입법의무의 대상이 되는 입법사항이 여러 가지로 나누어져 있을 때에 각 입법사항에 관하여 모두 규율하고 있으나 입법자가 질적·상대적으로 불완전 불충분하게 규율하고 있는 경우를 말하고 있으며, 이와는 달리 위 입법사항들 중 일부의 입법사항에 대하여는 규율하면서 나머지 일부의 입법사항에 관하여서는 전혀 규율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즉 양적·절대적으로 규율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진정입법부작위로 보고 그 위헌성여부를 판단한 사례들이 많다.
  이러한 입장에서 살피면,
  이 사건 조약 제2조 제2항(b), 위 합의의사록 제2조(d)가 1945. 8. 15.이후에 비통상의 접촉과정에서 취득한 청구권이면 아무런 제한없이 모두 이 사건 조약상의 청구권 자금에 포함되어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함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은 바, 위 조약 등이 확인하고 있는 청구권은 그것이 일본국 국책은행이든 아니든간에 일본국의 지배하에 있는 금융기관에 예입하거나 송금한 예입금이라면, 그 예입된 화폐가 일본국의 화폐이거나 다른 나라의 화폐이거나를 묻지 아니하며, 그 청구권이 상속으로 인하여 승계된 것이거나 일반거래에 의하여 양수된 것이거나를 묻지 아니하고, 모두가 위 조약상의 청구권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위 조약에 따라 입법자가 입법하여야 할 입법사항은 일본국 화폐에 의한 청구권, 다른 나라의 화폐에 의한 청구권, 일본국의 국책 금융기관에 예치한 청구권, 기타 일본국의 지배하에
있는 금융기관에 예치한 청구권 등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위 청구권자금법은 제5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국민이 가지고 있는 1945. 8. 15. 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은 이 법에서 정하는 청구권 자금중에서 보상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여 1945. 8. 15. 이후의 위 청구권에 대하여는 보상하지 않음을 명백히 하고 있음에 반하여 위 청구권신고법은 다수의견에서 본 바와 같이 제2조 제1항 제1·5·7호에서 1945. 8. 15.이후에 비통상의 접촉과정에서 취득한 청구권에 대한 보상을 실현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으나 그 청구권 중에서 구 군정법령 제57호 일본은행권·대만은행권의 예입규정에 의하여 지정된 금융기관에 예입한 예입금 등 만을 신고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위 법조항 제1호)이고, 위 청구권보상법은 제2조 제3항에서 청구권의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 자와 동일인이 아닌 경우 즉 청구권을 인수한 자에 대하여서는 청구권자로부터 보상금수령의 위임을 받거나 상속인이 아닌한 보상하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위 3법은 위 여러개의 입법사항중 일본국 화폐에 의한 청구권의 보상, 일본국의 국책금융기관이었던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조흥은행, 조선상업은행, 조선신탁회사, 조선저축은행, 금융조합연합회(위 군정법령 제2조 지정 금융기관)에 예치한 청구권의 보상, 청구권을 가지고 있는 그 본인이나 그 상속인에의 보상에 관한 입법사항에 대하여서만 규율하고 있을 뿐, 나머지 입법사항에 대하여서는 불완전 또는 불충분하나마 규율하려고 한 바도 없는 등 전혀 규율하고 있지 아니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는 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라고 봄이 마땅하다.
    (2) 이 사건의 경우를 살피면,  
  청구인은 해방사실을 모른채 1945. 8. 21. 일본국 화폐 17,900엔을 위 3법의 지정금융기관이 아닌 만주○○은행 만주 안동(현재 단동)지점을 통하여 송금하였던 청구권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으나, 청구인은 위 (1)항에서 본 바와 같은 진정입법부작위로 인하여 대일청구권 신고조차도 할 수 없게 됨으로써 위 재산권을 침해당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이 사건의 경우가 위 3법의 보상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시인하면서도 부진정입법부작위라고 강변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입법자가 재량으로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은 경우에는 보상을 거부하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 이유가 어떠한 것인지에 관하여는 설명하고 있지 아
니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우므로 부당하다.
  마. 이 사건 심판청구는 위의 진정입법부작위가 현재까지도 계속하고 있으므로 심판청구기간을 도과한 바가 없다(헌법재판소 1994. 12. 29. 선고, 89헌마2 결정 참조).
  바.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는 그 어느 경우나 적법하므로 본안판단을 하였어야 할 것으로 믿으며 이에 반하는 다수의견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이다.
 재 판 장          재 판 관         김   용   준
재 판 관         김   진   우
재 판 관         김   문   희
재 판 관         황   도   연
재 판 관         이   재   화
주 심 재 판 관         조   승   형
재 판 관         정   경   식
재 판 관         고   중   석
재 판 관         신   창   언